지난 주, 여러 곳에 보낼 시를 만지작 거리면서, 써 둔 산문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이 곳에 산문 한편을 올리는건 어떻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산문을 하나 포스팅 하겠습니다.



                                             할아버지를 붙잡던 손



어릴 적 할아버지는 막내 아들집인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모두 도망치듯 사라지곤 했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가 큰댁으로 돌아가실 때, 우리 형제들 중 누군가는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버스 기사들은 이런 할아버지들을 매우 싫어했다.

할아버지가 다 내리기도 전에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신경질 적으로 출발하기도 했고,

버스를 탈 때도 버스에 다가가면 백미러로 보고 있던 운전사가 그대로 도망가듯 출발한 적도 많았다.



할아버지 혼자서는 도저히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꼭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나라고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버스 운전사도 미워보였고

굼뜬 할아버지는 더 미워 보였다.



이런 탓에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면 우리 형제들은 다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

집에서 머뭇거리다가 붙잡혀서 할아버지가 집에 가자고 하시면

꼼짝없이 할아버지 모시고 버스 타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서도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였다.

사람이 꽉 찬 버스에 올라서서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쓰러지듯 다가가셨다.

대부분은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이런 할아버지가 미웠던지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언제나 붉게 달구어진 얼굴로 할아버지를 쫓아다녀야만 했다.



할아버지가 왜 그리 자주 집에 오시는지 불만이었다.

거동도 잘 못하시면서 왜 그런 불편을 겪으면서 우리 집에 사흘이 멀다 하고 오시는지 정말 난 이 부분에 대해선 할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와 계시면 밖에서 놀다가도 할아버지가 버스타고 집에 가실일이 걱정이 되어 스스로 집에 들어가곤 했다.

요즘은 차가 흔해져 자가용으로 모셔도 되고, 택시를 타고 가도 되지만, 그 때는 그랬었다.

얼마 전 1박 2일간 회사에서 영등포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우리 봉사단의 역할은 버스에서 내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주로 내가 이를 도맡았다.

어릴 적 할아버지 손을 붙잡아 드린 다년간의 잠재된 경험과 노하우가 발휘되었다.



내 손에 의지해 버스에 내리던 할머니들이

잡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손이 여자 손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 어릴 적 내 할아버지를 붙들고 손잡아주던 기억이 손끝에서 느껴져 왔다.



내 할아버지를 많이 잡아 드렸던 손,

나도 모르는 사이 따뜻해져 있었나 보다. 



* 사진출처 : 플리커< Jakob Parrish>
 
양해기 | 한화63시티 임대차마케팅팀 매니저
안녕하세요. 임대차마케팅팀 양해기 매니저입니다. 저는 전국 40여개 빌딩의 사무실 임대 관련 업무를 담당합니다. 회사 업무 외에 저는 시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지요.
(시집 『4차원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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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호 2013.06.26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나게하고
    겸손하지만 열정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셨네요^^

  2. 조수진 2013.06.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에 글을 읽었는데, 마음에 잔잔한 여운이 남습니다 ..^^ 감동적인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

  3. 정원 2013.06.27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할아버지 생각 많이 나네요... ㅠㅠ

  4. 이종근 2013.06.27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어릴적 외갓집에 갔던 기억들이 생각났습니다.
    바뻐서 잊고 있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 좋은 글입니다.

  5. 유성태 2013.06.27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다가 문득 저희 할머니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중학생일때 할머니와 함께 성당에 갔었던 때가 연상이 되네요.
    그땐 저도 별로 유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그시간만 되면 저는 할머니와 성당을 가야해서 제가 밖에서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집에 들어와야 해거든요.
    윗 어른를 잘 공경하고 살아 계셨을때 좀더 가까이서 부축하고 돌봐들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글이네요. 자주 부모님께 문안전화 드리고 시간이 나면 찾아 뵙야 겠네요.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더 따뜻해 졌네요. 감사합니다.^^

  6. 조옥현 2013.06.27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뵌적은 없지만 어릴적 동네 친구의 할머님이 유독 생각납니다.
    옥수수 뻥튀기도 귀했었는데.. 할머니는 제가 가면 꼭 쌀뻥튀기를 주셨지요..
    친구 아버지가 소문난 효자라서 할머니를 위해 쌀을 뻥튀기 하셨는데..
    제가 가서 먹곤 하니.. 제가 좀 미웠겠지만...
    할머니와 자주 놀던 모습에 제가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7. 신기종 2013.06.2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아버지와 어렸을 적 함께 방을 썼는데,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불편하다고 부모님께 이런 저런 불평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좋은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8. 이지혜 2013.06.28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도, 글도 매우 감동적이네요. 업무를 하면서도,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9. 백준하 2013.06.28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아버지를 생전에 뵙지 못했지만,, 올려주신 글을 보니.... 돌아가신 할머님이 생각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 조현수 2013.07.01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 할아버지와 아이손이 인상적이네요..

  11. 양해기 2013.07.01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비슷한 추억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