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에 어떤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영진이었다.

아이들의 첫눈에도 영진이는 좀 이상해 보였다. 다른 아이들 보다 얼굴이 핼쑥하게 길었고, 고개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인사를 하고 책상에 가 앉을 때까지의 걸음걸이와 행동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쉬는 시간에 영진이는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도 영진이는 누가 툭~툭 치기 전에는 고개도 잘 들지 않았다. 전학 온지 일주일이 될 때까지도 영진이의 귀에 솜이 넣어져 있었다는 걸 눈치 챈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영진이는 자주 귀에서 솜을 빼내고 새 솜을 갈아 끼워 넣었다. 귀에서 빼낸 솜에는 누런 고름이 묻어 있었다. 학급 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조용한 학생 영진이는 금방 놀림감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건드리기도 하고, 욕도 하기 시작했다. 영진이는 아이들이 어떤 소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꼬집거나 때리면, 그때는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냈다.

아무 반응이 없는 줄 알았다가 영진이가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더 영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진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괴롭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영진이 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고름과 언제나 흰색으로 부서져 있는 손톱, 얼굴에 알 수 없는 상처로 생긴 딱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던 영진이를, 아이들은 불결하고 찜찜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손대는 것조차 불결했는지 어떤 아이는 빗자루를 가지고 엎드려 있는 영진이를 뒤에서 쿡쿡 찌르고, 영진이가 일어나 찡그리며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킬킬거리곤 하였다.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영진이 어머니가 영진이를 데리러 오셨다. 영진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영진이와 사이좋게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영진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과자나 떡을 돌리기도 했다. 선생님 역시 영진이를 특별하게 보지 말고 보통친구로서 잘 대해 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나 선생님과 영진이 어머니가 없을 때의 영진이는 친구들의 심한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마 우리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도, 저번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괴롭힘에도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영진이는 어머니나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기르고, 소중한 내 딸아이의 눈 수술 때문에 병원에도 들락거려보니, 갑자기 그 아이, 영진이가 생각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지금쯤은 살아있지도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해지는 영진이.


생각하면 괜히 슬퍼지는 아이

때늦은 지금에야 생각나는 아이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아이

혹시 나도 작대기로 그 아이 영진이를 찔러대지는 않았는지

몸 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무릎 꿇고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하고 싶은 아이



그렇지만 요즘처럼 내가 너무 힘들 때

내 곁에 와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가는 아이



어쩌면 나 자신이 그 아이 영진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아이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처음으로 짝사랑 했던 여자아이와 함께

가장 많이 생각나는 아이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

수행승을 닮았던 아이

눈망울이 누구보다 깨끗하고 맑았던 아이

누가 자기를 귀찮게 해도 자기는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았던 아이

말을 더듬고 잘 못했지만 선생님 말을 잘 알아들었던 아이



많이 아팠지만

아무에게도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아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전학을 많이 다녔을 아이

오늘처럼 칼칼하게 비 오는 밤

빗방울들이 작대기 하나씩을 들고

나를 찌르고 눌러 본다.




* 사진출처 : Flickr<vori>



양해기 | 한화63시티 임대차마케팅팀 매니저
안녕하세요. 임대차마케팅팀 양해기 매니저입니다. 저는 전국 40여개 빌딩의 사무실 임대 관련 업무를 담당합니다. 회사 업무 외에 저는 시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지요.
(시집 『4차원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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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준환 2013.03.29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날을 돌아보게 해 주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엔 잠시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 통화라도 해야겠어요.